단 몇 쪽에 불과한 초단편소설에서도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결말의 반전을 선보여 코믹 SF의 거장으로 유명한 프레드릭 브라운(Fredric Brown)이 쓰고 서커스출판상회에서 2016년에 출판한 프레드릭 브라운 단편선인 아마겟돈, 아레나(두 권 모두 From These Ashes : The Complete Short SF를 분책한 것임.)를 읽어봤는데, 아레나에 수록된 단편인 화성의 거북(Six-leggeed svengali)에서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인공인 스펜서는 에버튼 박사가 이끄는 탐사대와 함께 금성의 동물을 포획하는 일을 하다가 자신이 에버튼 박사와 대원들에게 금성의 진흙거북을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 하였지만 그 말과 진흙거북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사실 진흙거북이 자신을 발견한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여 일시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한 것임.), 335쪽에서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박사가 말했다. "우리가 합의한 내용이 기억 안 나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부분은 바로 고갯짓의 해석에 대한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무조건 Yes는 긍정, No는 부정이기에 "밥 안 먹었니?"에 대해 밥 먹었다면 "Yes, 밥 먹었어요.", 밥 먹지 않았다면 "No, 밥 안 먹었어요."라고 하고 고개를 끄떡이면 Yes, 고개를 저으면 No가 되기에 위 문장에서 주인공의 행동은 기억 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질문에 대해 맞다면 네, 틀리면 아니요이기에 "밥 안 먹었니?"에 대해 밥 먹었다면 "아니요, 밥 먹었어요.", 밥 먹지 않았다면 "네, 밥 안 먹었어요."라고 하고 고개를 끄떡이면 네, 고개를 저으면 아니요가 되기에 위 문장에서 주인공의 행동은 기억난다는 뜻입니다.
원래 이 소설은 영어 소설이기에 영어 독자라면 주인공의 행동을 아무 문제 없이 이해하겠지만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어 독자가 읽는 상황이기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기억난다는 뜻의 행동은 이상할 수밖에 없어 번역자가 이를 염두에 두고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라고 고쳤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알라딘에 등록된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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