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게 드디어 WIN용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Planescape Torment)의 결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9월 초부터 즐겼으나 중간에 WIN용 심즈 2(The Sims 2)로 인해 잠시 그만두다가 추석 때부터 다시 즐겼으니 약 50일 정도의 플레이 시간이 들었네요.

마지막 부분에선 주인공의 죽음인 초월자와 만나고 대화를 통해 그를 융합시키는 방법으로 이끌어서 전투 없이 엔딩을 봤습니다.
엔딩에서 주인공을 향한 믿음을 간직한 채 초월자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동료를 남겨두고 혼자서 블러드 워로 떠날 줄 알았더니 소생술로 동료를 살린 후에 떠나고 래벌의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가?`라는 말과 함께 끝을 맺네요.

철학적이며 깊이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기에 게임 진행 중에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가?`에 대해 게임에서 드러난 답변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통해 삶을 되새겨 보자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후회에 대해 쓰는 선택지 중에는 `후회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후회스럽다.`라는 부분도 있더군요.)

화려한 마법을 기대하며 마법사로 전직하여 게임을 진행했건만 실제 전투에선 레벨 3 이하의 마법들(최고 9레벨의 마법까지 존재함)만 사용하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해골머리 모트와 기스저라이 다콘이 근접전을 치르고 뒤에서 프리스트(=성직자)인 서큐버스 그레이스 여사의 치료 마법으로 진행하다 보니 주인공은 그냥 전투하는 모습을 쳐다보는 신세가 되어 버리더군요.
(게임 자체의 전투 난도가 낮은 점도 한몫했겠지요.)

AD&D 방식의 롤플레잉 게임 중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즐기고 엔딩까지 본 작품으로 주인공의 연인인 데이오나라가 체험한 것이 들어 있는 감각석 이벤트 등 저에게 많은 감동을 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p.s. 게임을 끝내고 보니 영화 메멘토와 토탈리콜이 생각납니다.
죽을 때마다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기에 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새겨 놓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영화 메멘토,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고 모든 일을 하나하나 밟아나가 자신의 몸을 이끌 또 하나의 그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도록 한 점에서 영화 토탈리콜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p.s. 팔콤(日本ファルコム)의 이스(イース)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아돌이나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의 주인공인 이름없는 자나 오랜 세월 동안 주인공을 향한 사랑을 간직한 채 헤어져야만 했던 여성이 많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p.s. 막바지에서 이름없는 자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지만 게임 내에서 보여 주지를 않습니다.
다만 진짜 이름을 알게 되면서 `이렇게 간단한 이름이었단 말인가?`로 끝을 맺던데 정말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데, 이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가 그를 알게 되고 그가 숨을 곳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름을 갖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PC98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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