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의 사계,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과 제9번 등 우리에게 친숙한 클래식도 많지만 보통 지루하고 딱딱하여 잠자기 딱 좋다는 이유로 멀리할 때가 잦은데, 2001년 우주 오디세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등의 영화에서 특정 장면에 딱 어울리는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여 분위기를 한층 돋우기도 하고 디즈니의 환타지아 시리즈처럼 아예 클래식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도 있으며 베토벤 바이러스나 노다메 칸타빌레처럼 드라마나 만화의 소재로도 사용되어 큰 인기를 얻은 예도 있습니다.
이처럼 클래식도 여러 문화와 결합하여 그 문화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예를 봤을 때 게임에서도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여 그 분위기를 잘 살린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찾아봤더니 알고 있는 게임이 그리 많지 않아 몇 개만 눈에 띄던데 또 다른 게임이 있다면 언급 좀 해주세요.
(단, 리듬 액션 게임 등 음악이 게임 자체인 것은 제외했습니다.)
01. DOS용 어스웜 짐 2(Earthworm Jim 2)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우주복에 의해 강력한 힘을 얻게 된 지렁이 짐이 등장하는 액션 게임으로 악당에게 납치당한 여자친구를 구출한다는 평범한 설정이지만 지렁이가 주인공이라는 설정답게 독특한 기술로 여러 고난을 이겨내고 각 스테이지도 유머를 느낄 수 있게 꾸며져 있어 재미있게 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에서 제1악장과 제3악장이 사용되었는데, 주인공 짐이 원래의 모습인 지렁이로 돌아가 인간의 몸속 창자처럼 꿈틀거리는 통로를 돌아다니며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스테이지에서 느리고 반복되는 음조로 야상곡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제1악장과 지렁이가 흐느적거리며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잘 어울렸으며 악당과 동시에 출발하여 앞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을 피하며 열심히 달려 여자친구가 있는 목적지까지 먼저 도착해야 하는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맹렬히 다가오는 파도처럼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음조의 제3악장과 쉴 틈도 없이 무작정 뛰어야 하는 스테이지의 구성이 상당한 긴장감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02. SFC용 하멜의 바이올린(ハーメルンのバイオリン弾き)
마왕의 부하들이 마을을 습격하려는 그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용자 하멜의 등장에 의해 위기를 벗어나고 마을을 구해달라는 소녀의 부탁을 듣고 소녀와 함께 마왕 퇴치에 나서게 된다는 액션 게임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을 때 나타나는 음표로 공격하거나 여러 장치를 조작하고 때로는 뒤에 따라오는 소녀를 던지는 등 좀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하며 아기자기한 게임 배경과 캐릭터를 통해 동화적인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 '호두까기 인형'에서 작은 서곡 그리고 꽃의 왈츠,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25번에서 제1악장 그리고 레퀴엠,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 그리고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 되시니 등 귀에 익숙한 클래식이 등장하여 게임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03. SFC용 극상 파로디우스(極上パロディウス)
Konami(コナミ)에서 제작한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를 사용하여 그라디우스(グラディウス)의 패러디 슈팅 게임으로 제작한 파로디우스 시리즈 중 하나로 각 캐릭터의 독특한 공격 방법과 시리즈 특유의 풍자와 유머 그리고 숨겨진 스테이지 등 다양한 요소로 돋보였는데, 게임기의 성능 한계인지 일부 스테이지에서 좀 느려지는 현상이 있어 아쉬웠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서곡, 로시니의 오페라 '빌헬름 텔'에서 서곡,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에서 제3막 '왈큐레',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에서 제4악장 등의 클래식을 비롯해 캐릭터 주제곡과 여러 경음악을 편곡하여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신 나는 분위기의 음악이지만 지그재그로 된 도로를 배경으로 여러 신호에 따라 등장하여 뒤에서 쫓아오는 적들의 공격을 피해 빠르게 통과해야 하는 스테이지에서는 '빌헬름 텔 서곡'이 사용되어 경쾌하고 매우 빠른 질주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였고 화면 전체를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전함이 등장하는 스테이지에서 '왈큐레'가 사용되어 그 웅장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04. PC98용 은하영웅전설 4 EX(銀河英雄伝説4 EX)
국내에도 큰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전략 게임 시리즈 중 하나로 국내에도 DOS 시절에 한글화되어 출시되었는데, 모든 상황 정보를 토대로 전략을 짜야 했던 전작과 달리 한 개인의 관점에서 게임을 진행하여 전략의 폭은 좁아졌지만 공적을 쌓아 더 높은 직위를 얻거나 쿠데타로 정권을 바꾸는 등 키워나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오프닝을 비롯해 전략, 전술, 전투 화면에서 클래식이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게임 선곡을 이용해 자신의 입맛대로 곡을 선택할 수 있게 하였는데,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바그너의 악극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 바그너의 악극 '탄호이저', 라벨의 '볼레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에서 제4악장,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에서 제1악장,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8번 '비창'에서 제2악장, 파벨의 캐논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05. WIN용 홈월드(Homeworld)
우주를 배경으로 완벽한 3차원 공간에서 펼쳐지는 실시간 전략 게임으로 혁신적인 그래픽과 뛰어난 이야기와 설정, 상성 관계 등 여러 부분에서 극찬을 받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복잡한 인터페이스와 높은 사양 때문에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첫 일화의 거대한 모선이 정비를 마치고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려는 모습에서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사용되어 그 여정이 쉽지 않음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